19. 11. 21.

The Bab Ballads,1898 그리고 떠나가는 배

 

 

 



오랫동안 손에 잡고 있던 책, 밀린 숙제를 끝냈습니다.

지난 몇 달간 작업실을 재정비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책을 만들고 살아야할지에 대해 존재론적인 고민에 빠져 허우적대며 보냈습니다.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배와 같은 마음이라고 하면 좀 비슷할까요.
작은 돗단배 정도가 아닐까..? 뗏목인가? 돗단배면 좋겠네요.

직접 나무를 잘라서 만든 작은 돗단배, 참 더디게도 만들었고 앞으로 항해를 하면서 계속 손을 볼 겁니다. 내가 만든 것이니까요. 모든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볼품없을지는 모르지만 내 마음에 드는 작은 배가 만들어졌고 이제 바다로 나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저 배 만드는게 좋았던 것 뿐인데, 또다른 고민을 할 때가 되었나봅니다.
어디로, 왜, 가야할까.

19. 6. 12.

저마다의 방법


책을 만드는 저마다의 방법이 있다. 정답은 없다.
가장 좋은 것은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어렵더라도 필요한 일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1920년대 책의 헤드밴드를 보고 잠시 무언가를 깨닫고 있는 저녁.


19. 5. 28.

작업일기





나는 책만드는 일을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로 살아갈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게 때로는 아니
늘 부끄럽다. 사실 무슨 일로든 돈을 번다면
그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것도 부끄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들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어서 먹고 산다면
그것도 부끄러울 것이다.
결국 나는 돈을 버는 것이 부끄럽다. 타고나게 자본주의가 맞지 않나보다.
아마도 때로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할 때에
나는 내가 아닌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다.
누구나 그렇게 살 것이다. 그런데 그게 참 불편하고 불쾌하다.
결국 내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불쾌하게 느껴지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뭔가를 만들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견뎌가는 것이 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늘 필요한 것 보다 부족하게
남들이 말하는 것보다 적게 돈을 벌며 사는 것이
내가 살기 위해 찾은 방법이다. 뭐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만큼은 돈을 벌어야겠지만, 나는 늘 내가 필요한 것 이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이번달에도 필요한 돈이 부족하고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유난히 '쯪쯪'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
늦은 밤 나의 사랑하는 작업실에서.


19. 3. 19.

가죽모서리 열린등 제본 노트




제가 만든 것은 아니고, 제본 수업을 오시는 분께서 만든 책입니다.
삶의 태도를 배우고 싶은 분인데요. 만드시는 책도 주인을 닮았습니다. 
너무 긴장하지 않고 조급해 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여유있게, 천천히 즐기면서.
저도 마음의 여유를 좀 갖고 싶어서, 일단 평소 마시던 커피의 양을 반으로 줄여 보았습니다.

종이, 커버지, 보드의 두께, 실의 색, 책의 두께, 커버 디자인...
책 한 권을 만들 때 선택할 것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책을 만들면서 상상하지요. 이런 느낌의 책을 만들고 싶다...
완성하고 보면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이라도 다르게 마련입니다. 더 좋기도 하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고, 의외의 발견을 할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지요.
한 권의 책을 끝내고 나면, 다음에는 이렇게 해 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기 때문에 계속 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삶도 비슷한 것 같아요.
때로는 마음에 안들고 막막하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 자리에서 멈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음에는, 앞으로는, 다시 기대하는 마음으로 설레이며 시작하는...책을 만들 때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책 만드는 일만큼 즐거울 수는 없겠지만요.




19. 2. 7.

윌리엄 호가스, 1890년 출판













책을 대할 때는
그것도 백년도 더 된 책을 대할 때는
겸손해야한다는 교훈을 깊이 남겨준, 호가스.